21.04. 요한복음 20:10-18 묵상 "마리아야!" — 절망을 기쁨으로 바꾸신 주님의 한마디
21.04. 요한복음 20장 10절로 18절을 읽으면서 당신이 마리아라고 생각해 보십시오. 그 구절을 묵상하면서 몇 번 읽으십시오. 마리아는 어떻게 느꼈을까요? 1번, 빈 무덤에 혼자 있을 때. 요한복음 20장 10절로 15절 말씀을 참고로 덧파시오. 2번, 예수님께서 마리아의 이름을 부르실 때, 요한복음 20장 16절 말씀을 참고하시오.
요한복음 20:10-18 묵상
"마리아야!" — 절망을 기쁨으로 바꾸신 주님의 한마디
"예수께서 이르시되 마리아야 하시거늘 마리아가 돌이켜 히브리 말로 랍오니 하니"
(요한복음 20:16)
서론
요한복음 20장 10-18절은 성경 전체에서 가장 아름답고 감동적인 장면 가운데 하나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최초로 목격한 사람은 왕도 아니었고 제사장도 아니었으며 사도들도 아니었습니다.
바로 막달라 마리아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일곱 귀신을 쫓아내어 새로운 삶을 주셨던 여인(누가복음 8:2)에게 가장 먼저 나타나셨습니다.
이 본문을 묵상할 때 단순히 읽는 것보다 자신을 마리아의 입장에 두고 읽으면 훨씬 깊은 감동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1. 빈 무덤에 혼자 남겨졌을 때
(요한복음 20:10-15)
"제자들은 자기들의 집으로 돌아가고"
(요 20:10)
① 깊은 상실감
베드로와 요한은 무덤을 확인한 후 떠났다.
그러나 마리아는 떠나지 못했다.
왜 그랬을까?
그녀에게 예수님은 단순한 스승이 아니었다.
인생을 구원해 주신 분이었다.
어둠 속에 살던 자신을 새 사람으로 만들어 주신 분이었다.
십자가 사건만으로도 견디기 어려운데,
이제는 시신마저 사라졌다.
마리아는 생각했을 것이다.
"주님마저 잃어버렸다."
② 완전한 무력감
당시 여성 혼자서 무엇을 할 수 있었을까?
로마 군인들에게 따질 수도 없다.
유대 지도자들을 찾아갈 수도 없다.
시신을 찾을 방법도 없다.
눈물 외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③ 하나님이 침묵하시는 것처럼 느껴지는 시간
많은 성도들이 경험하는 순간이다.
기도해도 응답이 없고,
하나님이 멀리 계신 것처럼 느껴지는 때가 있다.
마리아는 지금 바로 그런 시간을 통과하고 있다.
천사들을 보고도 울었던 이유
"여자여 어찌하여 우느냐"
(요 20:13)
놀라운 사실은
천사 둘을 보고도 울음을 멈추지 않았다는 점이다.
보통 사람이라면 천사를 보면 놀라거나 기뻐할 것이다.
그러나 마리아는 그렇지 않았다.
그녀의 관심은 오직 예수님이었다.
참된 사랑의 특징
마리아는
기적보다 예수님을 원했다.
천사보다 예수님을 원했다.
설명보다 예수님을 원했다.
그래서 여전히 울고 있었다.
찰스 스펄전
스펄전은 이 장면을 설명하며 말한다.
"천국의 모든 영광보다 그리스도 자신을 원하는 영혼이 가장 복된 영혼이다."
2. 예수님께서 이름을 부르실 때
(요한복음 20:16)
"마리아야"
성경에서 가장 감동적인 한 단어
예수님은 긴 설교를 하지 않으셨다.
부활에 대한 설명도 하지 않으셨다.
단 한 마디만 하셨다.
"마리아야"
① 자신을 알고 계심을 깨달았을 때
그 순간 마리아는 깨달았다.
예수님은 죽지 않으셨다.
살아 계신다.
그리고 여전히 자신을 알고 계신다.
이름을 안다는 것은 관계를 의미한다.
선한 목자의 약속
예수님은 이미 말씀하셨다.
"나는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니"
(요한복음 10:14)
"그가 자기 양의 이름을 각각 불러 인도하여 내느니라"
(요한복음 10:3)
지금 그 약속이 성취되고 있다.
② 슬픔이 기쁨으로 바뀌는 순간
몇 초 전까지
절망
슬픔
혼란
외로움
뿐이었다.
그러나 이름을 부르시는 순간
모든 것이 바뀐다.
십자가가 끝이 아니었다.
죽음도 끝이 아니었다.
주님은 살아 계셨다.
③ 눈물이 사명으로 바뀌는 순간
몇 분 전까지만 해도
무덤 앞에서 울고 있었다.
그러나 잠시 후
최초의 부활 증인이 된다.
존 맥아더
맥아더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예수님은 먼저 사실을 설명하지 않고 관계를 회복시키셨다."
먼저 이름을 부르셨다.
그 후에 사명을 주셨다.
왜 예수님은 이름만 부르셨을까?
주님 음성의 독특함
마리아는 예수님의 얼굴을 보았지만 알아보지 못했다.
그러나 이름을 부르는 음성은 알아들었다.
수없이 들었던 음성이었기 때문이다.
존 스토트
"마리아를 깨우친 것은 시각이 아니라 관계였다."
믿음은 단순한 정보가 아니다.
인격적인 만남이다.
마리아의 "랍오니"
"랍오니"
이는 단순히 "선생님"이라는 뜻이 아니다.
매우 친밀하고 존경이 담긴 표현이다.
우리말로 표현하면
"선생님!"
"주님!"
"제가 사랑하는 스승님!"
정도의 의미가 된다.
영적 의미
우리의 삶에도 빈 무덤의 시간이 있다
마리아는
기도 응답이 없고
주님이 보이지 않고
모든 것이 끝난 것 같은
시간을 지나갔다.
그러나 바로 그때 예수님은 가장 가까이에 계셨다.
우리는 종종 주님을 못 알아본다
예수님은 이미 곁에 계셨다.
그러나 마리아는 알아보지 못했다.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이다.
주님이 일하고 계셔도 깨닫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팀 켈러
"하나님은 부재하신 것이 아니라 종종 우리가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임재하신다."
유명 설교자들의 해석
마틴 로이드 존스
로이드 존스는
마리아가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한 이유를
슬픔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깊은 슬픔은 우리의 시야를 좁게 만든다.
그러나 예수님의 음성이 그 영적 안개를 걷어낸다.
A. W. 토저
"하나님은 군중 속에서 우리를 부르시는 것이 아니라 이름으로 부르신다."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는 개인적 관계이다.
찰스 스펄전
"예수님께서 마리아를 부르신 것처럼 지금도 자기 백성을 이름으로 부르신다."
적용 예화
길 잃은 아이와 어머니
백화점에서 길을 잃은 아이를 생각해 보자.
수많은 사람의 목소리가 들린다.
그러나 멀리서
"○○야!"
어머니가 부르는 순간
즉시 알아듣는다.
왜일까?
관계 때문이다.
마리아도 마찬가지였다.
많은 소리를 들었지만
예수님의 음성을 듣는 순간 즉시 알아보았다.
어두운 밤의 등대
선원은 안개 속에서 방향을 잃는다.
그러나 멀리서 등대 불빛이 보이면 살아날 희망이 생긴다.
마리아에게
"마리아야"
라는 음성은 바로 그 등대였다.
오늘 우리에게 주는 교훈
1. 하나님은 우리의 이름을 아신다
우리는 군중 속 한 사람이 아니다.
하나님은 각 사람을 개인적으로 아신다.
2. 가장 깊은 절망 뒤에 가장 큰 은혜가 있다
마리아의 가장 어두운 아침은
인생 최고의 아침이 되었다.
3. 하나님은 울고 있는 사람을 먼저 찾아오신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가장 먼저 찾아가신 사람은
권력자도 아니고 성공한 사람도 아니었다.
무덤가에서 울고 있는 여인이었다.
결론
요한복음 20:10-18은 부활 이야기인 동시에 사랑 이야기이다.
마리아는
빈 무덤 앞에서 절망했고
하나님이 침묵하신다고 느꼈고
눈물로 무너졌지만
예수님께서
"마리아야"
라고 부르시는 순간
모든 것이 바뀌었다.
이 장면은 부활 신앙의 핵심을 보여준다.
부활은 단순히 죽음을 이긴 사건이 아니다.
부활은 살아 계신 주님이 자기 백성을 이름으로 부르시는 사건이다.
참고문헌
성경전서 개역개정, 대한성서공회.
The Gospel According to John.
John.
The Message of John.
John MacArthur New Testament Commentary: John 12–21.
Morning and Evening.
The Pursuit of God.
The Resurrection of the Son of G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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